면접

현자타임 관리

skid018 2019. 7. 8. 13:04

드디어 오늘이다.

2주전에 본 면접 결과 발표일이다.

어젯밤 꿈이 뭐였는지 아침을 먹으며 생각해 봤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끼가 떨어진 것 같다. 노인이 따준 풋대추를 먹는 꿈을 꾸며 대합 불합격을 예지했던 스무살 신기는 이제 없어진것 같다. 세파에 찌들어 그런 것인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합격하려나 보다.

 

면접 당일에는 불합격을 예감했었다. 고개를 숙이는 면접관의 어두운 표정에 내 어깨도 덩달아 쳐졌다.

기대를 접는것이 멘탈 데미지를 줄이는 길같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틈틈히 면접순간을 리와인드 시켜 보았다. 표정이 어두운 면접관도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던 면접관도 있었다. 제대로 답변을 해낸 항목도 서너개 더 있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하니 면접관이 일부러 어두운 표정을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자에게 속마음을 들켜서는 제대로 된 면접 진행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합격한 현 직장 면접관들도 당시 똥씹은 표정들 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되돌려 볼수록 꼭 못 본 면접만은 아닌것 같았다. 이제 합격에 대한 기대는 슬금슬금 과반까지 차 올랐다.

그래도 잘본 면접은 아니었다.

 

지난 몇일 간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직장을 멋지게 그만두고 폼나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상상을 말이다.
현 직장에서 받은 괄시와 천대와 설움과 울분을, 녀석들의 면전에 쏟아 부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결과 발표를 알리는 문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쯤 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결과 확인을 위해서 이메일을 확인 하란다.
사무실 모니터앞에서 하던 노비짓을 잠시 멈췄다. 양볼을 부풀려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켜 보았다.

빨리 확인해 버려야 불합격했을때의 충격이 적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껴먹으려고 오랫동안 주머니속에 넣어둔 사탕을 꺼내 들었을때, 껍데기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아이는 더욱 실망해 눈물을 흘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수신메일함을 열었다.

긴장감에 눈앞이 어른거려 활자가 얼른 읽히지 않았다.

얼핏 보니 따옴표가 안보였다. 축하합니다!! 에 들어갈 따옴표가 안보이는 것이다.

자세히 읽어봤다. 빌어먹을 예감은 틀린적이 없다. 불합격이다. 그럼 그렇치 긴 한숨이 나도모르게 흘러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와 땅을 쳐다 보며 흐느적 걸었다.

패배감에 고개가 아파오는것도 몰랐다.

 

자리를 지키러 돌아와 모니터를 보며 퇴근할때까지 자체 휴업을 하였다.
면접에서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비굴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비참했다.
생각해보니 되도않는 질문을 던지던 면접관들도 다 죽일놈들 이었다.
조직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만의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한 경험이 있나요 - 이따위 유치한 질문으로 사람의 역량을 평가 한다니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물을 들이켜 봐도 비참한 기분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면접 준비를 위해, 일상의 즐거움도 포기하고 열흘 간 긴장속에 나를 담금질 했던 개고생을 생각하니 화도 났다.
숨막히는 구직활동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숨겨놓은 희망이 하나 더 있었다.
내일 한개 더 면접 결과 발표가 남아있던 것이다. 오늘 떨어진 회사는 사실 1순위로 가고 싶은 회사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내일이 진짜다. 내일 것은 면접관의 반응도 괜찮았던 것이다.

 

다음날 오전에 발표한회사 면접 결과도 불합격이었다. 면접 분위기가 괜찮았다는 기분은 착각이었다. 매너 좋으신 면접관들이 웃으면서 떨어트린 것이다. 참으로 고맙다

 

심장속에 비참함과 패배감이 더할 수 없이 가득차 올랐다.

이 더러운 기분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러려면 이 구차한 구직활동을 집어 치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이따위 짓 말고 창업을 하자. 지인이 주점을 하는데 어여쁜 아르바이트가 잘 구해지지 않아 고민이 깊다고 했다.

야간 아르바이트 채용 전문 어플을 개발해 보는것이 좋을 것 같다. 어플개발을 대행해주는 곳은 많으니 아이디어만 훌륭하면 실현 할 수 있다. 역시 내 아이디어는 특출나다. 이렇게 똑똑한 나를 채용하지 않다니.
검색해보니 이미 수십개 유사 어플이 있었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는 애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여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부자들은 나같은 노비놈들을 채용하여 일을 시켜놓고, 몰디브에서 랍스터를 안주로 와인을 마시고 있을 터였다.

경쟁이 없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것 같았다.


세상을 보는 선구안도, 특출난 용기도 없는 비참한 월급쟁이 노비들은 육십이 되도록 모니터 앞에 묶여 남의 일만 해주다가 병원 침대에서 삶을 마감할 것이다.

평생을 눈치보며 받아온 월급으로 처자식 밥은 먹일 수 있을것이다. 그 뿐이다. 인생의 7분의 5를 회사에 갇혀있다 죽는 것이다.

하늘이 이토록 청연한데 창문 안에서 훔쳐 볼 수밖에 없다니.

그런 노비의 삶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이따위 삶 말고 창업을 해서 대박을 내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삶을 접어야 한다

무슨 아이템이 좋을것인가.

어플이나 제품을 개발할 지식이 없으니 장사를 해야 하려나.

물장사, 밥장사, 권리금과 인테리어에 몇억씩 투자했다가 장사가 안되면 어쩌지.

걱정마라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을 위해 체인점이 있다. 그럼 모든 체인점은 다 성공을 하나. 그것도 아닌것 같다.

창업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 재입사도 안되는데, 망하고 나서는 뭘하지.

 

돈도 안들고 회사를 그만둘 필요가 없는 창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그래 책을 쓰자. 돈도 안들고 회사를 그만둘 필요도 없다.

만오천원짜리 책 100만권만 팔리면 인세 10%만 해도 얼마냐.

글쓰기는 창업이다.
성공하면 통유리 전원주택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난에 묻은 먼지나 닦으며 살것이다.
가끔 나를 모시는 강연에도 참석하여 용돈에 보탤 것이다.

즐거운 상상으로 숨통이 좀 트이는 듯 하다.

빌어먹을 토익만료 시점이 다가오든지 말든지간에 남는시간에는 누워서 영화를 보며 낄낄댓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바람도 쐬러갓다. 이게 사는맛이다

 

몇주의 현자타임이 지나 취업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지원할 만한 회사가 눈에 띄었다.

아직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치유되지 않아 만사가 귀찮았지만 눈에 띈 김에 직무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경력이 100% 부합하지 않았다. 지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연봉을 찾아봤다. 밥은 먹고 살만 햇다.
시험은 몉번 봐야하나 찾아봣다. 면접을 2번 보는 곳이었다. 쉽지 않다.

합격하면 출퇴근 거리는 얼마나 되는 곳인가.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 보다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되지도 않을 고생 다시 시작하지 말자는 다짐이 생각나서 인터넷 창을 껏다.

하지만 세시간 후에 불현듯 떠오른 궁금함을 못참고 다시 접속해 봣다. 

다시는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은 구직사이트를 나는 어느새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채용 공고에서 가능성이라도 발견 된다면, 나도 모르게 희망의 불씨가 피어 오를 것이었다.

 

................

무너진 멘탈로인해 몸이 병들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 삶의 목표는 취업이 아니라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심신이 병들 정도의 패배감이 몰려 온다면 모든것을 포기하고 마음껏 놀기를 추천한다. 몇개 공고쯤 놓쳐도 상관없다. 그깟 취업이 내 건강보다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패배감에 무너진 자존심은 시간이 자연스럽게 치유해 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채용 공고를 보면 된다.

새로운 공고에서 채용 희망을 찾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다시 구직활동에 필요한 열정을 불어 넣을 것이다.

 

패배감을 잊기 위해 술 담배는 안하기로 한다. 자학해봤자 남는것은 속쓰림과 위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깟 구직 활동에 내 건강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와 같은 처량한 구직자 분들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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